🐘생각이라는 코끼리를 이고 다니는 님에게,

미출간 원고 #5 #6 미리보기

2022. 7. 15.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생각이라는 코끼리를 이고 다니는

님에게,

나래32
07.16.2022

미출간 원고

#5 View

#6 Just for a day

#5 View

happy를 쓰려다가,

happy-go-lucky가

키보드에 자동완성으로 툭 나왔어.

우연히 발견한 것이 찾던 것일 때가 있더라.

행복을 찾다 운 좋게 태평함을 발견한 것처럼.

나는 나로 태어났을 때부터 틀에 박힌 반복을 혐오했다. 버킷리스트에는 여행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새로운 것을 사랑한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생각. 최악의 밥집도 다신 안 가야 하는 식당을 찾은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즐거울 정도다. 자기 전에 오늘 겪었던 새로운 기억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분을 양념으로 바르고, 그 감칠맛을 더한 순간들을 곱씹으며 단잠에 빠진다.
매일 똑같은 태양, 똑같은 학교, 똑같은 회사는 싱거웠다. 제일 싫은 술 버릇은 했던 얘기 또 하는 거. 이런 반복 중에서도 최악인 것은, 후회할 법한 행동을 해놓고 불평만 반복하는 나였다.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는데 했던 얘기 또 하는 사람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게다가 했던 얘기 또 하는데 그중 태반이 볼멘소리인 사람이라니, 끔찍하지 않은가? 그게 나였다. 나는 스스로가 꼴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과의 별거를 선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기저귀를 갈아주며 읽은 책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런 글을 만났다.
“어린아이처럼 그(조르바)는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소리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돌, 그리고 새라는 신비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는 별거하던 ‘불평 많은 나’에게 찾아가 이 글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거래를 하나 했다.

매일 너의 볼멘소리를 들어줄 테니, 하루에 하나라도 어제와 닮은 것들에게 기적을 느껴 달라고. 기적이 부담스럽다면 행운이나 감사도 괜찮다고.

불평을 들어준다고 제 발로 찾아오는 것이 의아했지만, 거래는 성사되었다. 그렇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와 ‘불평 많은 나’는 각방을 쓰긴 했지만 다시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불평 많은 나’는 가끔 거래를 까먹고 불평만 한가득 가져와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의 신경을 돋우곤 했지만, 어느 날 귀여운 행운을 하나 찾아 주었다.
비닐을 뜯어 종이 상자에 부으니 초코송이들이 우다다 나왔다. 아이들은 누가 빨리 먹나 대결하듯 초코송이를 입안 가득 욱여넣었다. 순식간에 종이 상자는 텅 비었다.
무심코 상자를 버리려고 일어났을 때, 분명 아이들이 남김 없이 먹어야 했을 모자 쓴 초코송이 하나가 어디 숨어 있다 나오는 건지, 데구루루, 구르며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귀여운 초코송이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데리고 나오느라 늦었나 보다. ‘불평 많은 나’는 이 작은 행운에 처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는 전날 널어놓은 수건과 양말을 개고 있었다. 무늬나 색깔만 다르지 개는 방법은 똑같다. 지루한 작업이다. 그렇지만 매일 하는 것이 딸이 우리 집에 마음에 드는 양말이 없다고 툴툴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러우니까, 툴툴거리며 하나씩 개기 시작한다.
지루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재밌는 영상을 보면서 개기 시작했다. 바싹 마른 수건. 반을 접고 1/3만큼 접는다, 접은 수건 위에 또 1/3만큼 접어서 쌓는다.
영상에서 자기소개도 하지 않은 남녀가 서있다. 서로를 마주 본다. 오래 알고 지낸 것도 아닌데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마음이 통하는 둘. 여자에게 빙의 되어 비슷한 설렘을 펼쳐 보다 수건을 개며 현실로 접어든다.
폭신한 양말. 발바닥이 마주 보게 포개고 반을 접고 구멍을 만들어 넣는다.
또 다른 영상에서 바다를 보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있다.

“사실 난 산을 더 좋아해.”
“뭐? 당신, 매번 바다 가자 그랬잖아.”
“그건 당신이 바다를 좋아하니까 그랬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방금 만난 사람처럼 새로운 점을 발견하는 둘.
모래시계 안에서 중력의 방향으로 흐르는 모래처럼 한 커플은 시간의 처음에서, 또 다른 커플은 시간의 끝을 뒤집어, 서로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춤을 추며 인연의 소용돌이로 빨려 든다.
시간의 중간에서 사막의 모래같이 산적한 일거리를 안고 있던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는 바싹 말라버린 일상을 돌고 돌다 문득, 오아시스 같은 새로운 생각을 발견했다.
4살 아들의 줄무늬 양말은 여느 때와 모양은 같았지만 다른 것이었다. 둥글게 말아 놓은 양말이 펼쳐져 아들의 발을 감쌀 때마다, 아들은 걷고 또 걷는다. 바닥면이 새로운 장소를 밟을수록 거무튀튀해지고, 그만큼 아들의 추억은 켜켜이 쌓인다. 작은 양말의 까매진 바닥면에는, 그가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감사함도 묻어 있었다.

네모난 마른 빨래와 보송한 사랑이 겹 쌓인다.

네모나게 또는 동그랗게 모양을 갖춘 일상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와 ‘불평 많은 나’는 집 안에 감사함이라는 향초를 켜고, 산뜻한 일상의 향이 퍼진 방을 둘러보았다. 두리번거리던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는 미소가 감돈다.

우리는 투닥거리다가도 어느 날은 일상의 향기와 서로의 미소를 기억할 것이다.

#5 View fin.

#6 Just for a day

모든 것을 시작하고 끝낼 자유가

네 안에 있다는 걸 믿어줘.

사람이 하루에 하는 생각만 2만 개쯤 된다고 한다.[1]

알맹이 없는 포도가 그려진 종이를 가져와서, 매일 생각을 3만 번씩 할 때마다 포도알 스티커를 붙이라고 하면,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스티커를 붙일 자신이 있을 만큼 생각이 많은 편이다.
몸과 마음이 고단할수록, 잡념은 설거지를 방치했을 때 생기는 세균처럼 증식한다.

깨어 있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어쩌면 잠들고 나서도 꿈속에서 줄곧, 잡념들이 머릿속을 너울너울 떠다닌다. 지구를 받쳐 든 아틀라스처럼 생각을 이고 다니는 기분이다. 오래 이고 다녀서 그런지, 어깨가 굳은 채로 들려 있다. 그런 내가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고요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머릿속이 시끄러워서 견딜 수 없을 때는, 제발 하루만이라도 주위를 맴도는 수많은 생각들을 죽일 수만 있다면, 다시는 아이처럼 즐거워하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 또 다른 – 생각까지 하게 된다.

생각은 생각대로 안 될 때가 많다. 노크할 줄 모른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밀고 들어온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타난다. 내 안의 깡패나 다름없다.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애국가를 부르면서 참으려 해도 피식 새어 나오기도 한다.
불렀는데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샤워하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끝나고 나와 물기를 닦고 떠올리려 하면 증발하고 없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초능력자가 능력을 써서, ‘봄이 왔으니 트렌치코트를 새로 하나 장만하고 싶어’ 하게끔 조종하는 일은 없다는 걸.
사실 남편이 마법사여서, 내가 ‘10분만 쉬고 청소해야겠다’ 결심하도록 방문 너머에서 마법 지팡이를 돌리며 몰래 주문을 걸고 있지는 않다는걸. - 남편에게 그런 능력이 있으면 우리 집이 5성급 호텔로 탈바꿈하는 건 시간문제다. –
반대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가 조종할 수도 없다. 당신이 초능력자여서, 맞은편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는 당신의 친구가 결혼 얘기를 하다 돌연, 대한민국 헌법 10조 1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조종할 수 있는가? 친구가 헌법이라는 주제로 대화하도록 유도할 수는 있겠지만, 유도한다고 그에 맞게 행동할지 결정하는 것은 그 친구의 자유인 것이다.
분명한 것은 타인이 당신의 ‘결재’ 없이 생각이나 감정을 주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생각하거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우리는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우리만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내 캐릭터와 다른 사람의 캐릭터가 겹쳐 서있을 수 있지만, 현실에선 다른 사람이 내가 서 있는 자리와 같은 좌표에 존재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생각도 마음도 그렇다. 그러니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것은 오롯한 나의 몫이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나의 허락 없이 나를 상처 줄 수 없다."라는 간디의 말처럼, 누군가 당신을 무너뜨리고 싶어서 세 치 혀로 공격을 시도해도, 그것을 받기로 결정하는 사람은 당신이다.
책 <세도나 마음혁명>에서도 비슷한 문장이 있다. "누군가 "나 문제가 있어."라고 말한다면, 문제가 있는 단 하나의 장소는 그의 마음속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마음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그 어떤 것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그게 나의 것이고 다른 누구도 조종할 수 없다면, 상처받는 것과 사랑하는 것, 모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몸이 자동으로 처리하고 있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숨 쉬고 있는데도 평소에는 못 느끼는 것처럼, 당신이 행복을 받아들인 순간도 상처받기로 결정한 순간도 수 십 년을 자동으로 처리해왔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의 뜻대로 처리했는데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감정을 처리하는 속도는 칼날 같은 말이 찌르기 전에 미리 갑옷을 입고 옷매무새까지 매만질 정도로 빠르니까.[2]

나는 당신이 어떤 순간에도 삶의 방향키를 잡고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을 만큼 강인한 사람임을 중력의 법칙만큼 확신한다. 상황은 달라져도 모든 생각과 감정은 언제나 당신의 통제 아래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알았으면 한다.
당신은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당신은 처음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1] https://www.discovermagazine.com/mind/the-70-000-thoughts-per-day-myth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출처에 의하면,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이 한 달에 60만 번의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것을 단순히 30으로 나눠서 2만 개로 가정했다.

[2] https://youtu.be/g12bxfYVhMk 생각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궁금하다면 이 TED 영상을 보자.

#6 Just for a day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