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라는 유령을 찾는 님에게

미출간 원고 #2 미리보기

2022. 7. 4.

👻재능이라는 유령을 찾는 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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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라는 유령을 찾는

님에게,

나래32
07.02.2022

미출간 원고 #2

#2 Eighteen

누군가 브레이크를 밟으라 강요할지도 몰라.
그럼 난 너의 성능 훌륭한 에어백이 될게.
다치지 않게 마지막까지 지켜 줄게.
네가 도달하고 싶은 길,

그 길을 가는 내내 곁에 있을게.

`특별히 잘 하는 게 없는`이란 수식어를 이름표 앞머리에 새기고 학생 신분을 마침표 찍은 나는 몸 안에 좋아하는 능력이 하나도 없었다. 공부는 반에서 잘해야 13등을 했다. 드라마에는 반에서 13등인 친구가 주인공으로 출연하지 않는다. 많이 나와봐야 주인공의 친구2나 엑스트라3으로 출연할 것이다. 나는 지루한 드라마처럼 어디에서나 볼 법한 학생이었다. 아빠나 선생님이 공부하라기에, 같이 놀던 친구들이 시험공부 한다기에 뒤쳐질까 봐 공부했다. 공부를 해야 한대서 흉내 내기는 하는데 왜 해야 하는지 몰랐다.

학교에서 돌아와 아파트 10층에 자리한 우리집 문을 열기 전에, 펜스 없는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은 도대체 뭘까, 신은 존재할까, 여기서 떨어져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중2병에 걸린 아이가 으레 생각할 법한 것들이지만, 살면서 처음으로 품은 소중한 의문이었다. 어른이나 친구들이 부추겨서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롯이 스스로 그 작은 의문을 떠올리고 붙잡았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아무도 세상이니 신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대답해 주지 않았다. – 대부분 내가 이런 걸 궁금해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말하면 친구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까 무서웠다. 당시엔 그게 버려지는 것과 같다 여겼으니까. –
세상은 내가 탈출할 생각을 하는 걸 눈치챘는지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일거리를 던져주었다. 아침 7시에 알람은 울렸고, 버스는 교과서를 한 보따리 삼킨 가방을 업고 정류장에 도착해 밀린 숨을 몰아쉬는 내 앞을 스쳐 지나갔으며, 세상의 정체를 추적하는 동안 학교 진도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품는다고 성적을 올려주지도 않고,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나의 작은 의문은 세상의 잔소리에 묻혀 작아지더니 심연으로 사라졌다. 그 뒤로 나는 하던 대로 성적과 스펙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공부가 싫었다. 97점 맞았다고 분하다며 우는 친구의 마음을 평생 이해 못할 것이다. 나는 67점에도 그럭저럭 만족했다. 학습지에 빨간 빗금이 소나기처럼 내리는 것은 기분 나빴지만 축축해도 견딜만 했다.

그래도 좋은 대학을 가고는 싶었다. 다들 원하니까, 나도 원해야 될 것 같았다. 모두가 바라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나도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의 박수와 칭찬과 부러움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욕심껏 계획을 세웠다. ‘내일부터’ 하루에 12시간씩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6개월치 계획을 짜는데 반나절을 쏟아붓고, ‘좋아, 내일부터 새롭게 해보는 거야!’ 다짐하고 잠에 들었다.
아뿔싸, 6시에 일어나기로 했는데 1시간 늦게 일어나버렸다. 타이트하게 짜 놓은 계획이라 1시간씩 밀려버렸다. 하나씩 단추를 밀려 입어 삐뚤한 셔츠 같은 하루가 바보 같았다. 그 날은 멍청해 보였다. 실패였다. 시작부터 망친 내가 미웠다. 망한 하루니까 게임이나 하다가 내일부터 또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망쳤으면 벌을 줘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그래서 누워서 잠을 자지 않고 3시간만 엎드려 자고 일어나서 다시 계획대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10시간씩 자던 애가 3시간만 자고 일어나서, 잘 하지도 않던 공부를 ‘12시간’이나 계획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결국 몸의 편을 들어주었다.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또 모든 것을 망쳤다며, 이렇게 나약한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며 좌절했다. 작심삼일은 무슨, 작심1시간 만에 모든 계획과 긍정적인 내일을 시궁창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식으로 10년을 살았다. 나만큼 허송세월한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나처럼 미련하고 멍청한 사람도, 특출 난 것 하나 없는 사람도, 무언가에 재능이 있을까?
아니, 없을 것 같았다.

해답은 의지박약으로 산 지 10년이 되어가는 어느 날 우연히 다가온 책에 숨어있었다. <재능과 창의성이라는 유령을 찾아서>. 한 번도 가위에 눌려본 적 없는 사람이 폐가를 뒤져 유령을 찾아보려는 것처럼, 나는 재능을 찾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책 제목에 끌렸다. 제목이 나 같아서.
좋아하지 않는 곳에 재능이 도사리고 있어도 괜찮았다. 찾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책에서 ‘뜨거운 나의 마음’이라는 삽화를 보았다. 붉은색 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 손은 파란색으로 느껴질 만큼 차갑다는 부연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문장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

“재능은 이런 것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이다.”

나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많이 갖고 있었다. 잠을 조금만 자도 툴툴거리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이 글이 나 같은 사람도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돈이 되는 것이든, 되지 않는 것이든, 시답지 못하든 위대한 것이든 일단 적어봤다. 정말 ‘생각만 해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 ‘대단한 재능’이라면, 저자의 전제가 맞다면, 나도 재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희망의 끈을 잡고 싶었다.

나는 아래와 같은 것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이글거렸다. 당신도 재능이라는 유령을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같이 적어보자.
1. 버킷리스트, 무엇을 갖고 싶은지 생각하고 정리해서 다이어리에 적는 것
2. 어떤 성격의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
예) 버스에 앉아 있는데 내 무릎 위에 자기 짐을 올려놓는 할머니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3. 목표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해야 하는지 산출해보는 것
예) 한 달에 100만원씩 모으면 1억이 언제 모이는지.
4. 여행을 갈 계획이라면, 근처 맛집이나 관광 코스 계획을 세우고, 여행지와 관련된 책을 읽는 것
5. 지인들과 인생에 대해 논하고, 알게 된 지식이나 통찰을 나누는 것
예) ‘세상은 도대체 뭘까, 신은 존재할까, 여기서 떨어져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6.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
7. SNS에 내 생각을 남기는 것,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남기는 것
8. 책에서 인생의 이정표가 될 만한 문장을 찾는 것 - 책의 문장으로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것 -
9. 재밌는 드라마 몰아보기
10. 새로운 경험, 체험, 탐험. – 험험험. 나는 이 세 험들을 사랑한다. 쓰기만 해도 발가락이 들썩인다. –

이렇게 보면 나에게도 재능이 10가지나 생긴다. 든든했다. 뭐 하나 쓸모 있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괜찮다. 일단 목록을 갖고 있어라. 친구가 SNS로 책 내용을 올리길래 나도 따라서 올렸고, 재밌어서 계속 하다가 이 책을 읽고 재능이라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찾기 힘든 것도 찾게 되었다.
쓸모 없어 보였던 내 재능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아직도 수많은 재능들이 나를,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우연히’ 읽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는 이런 글이 있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서 그렇게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싶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하라.”

나는 이 글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서 그렇게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것이 재능이라고 생각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싶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하라.”

10개가 아니어도 좋다. 숫자는 아무래도 좋다.

당신의 재능은 무엇인가?

옳은 방식이라 믿고, 잘 자라길 바라며 뿌린 씨앗.
세상의 풍파를 겪으면 시들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열매를 맺을 수도 있다.
열매가 나올 때까지 뿌리면 풀 죽지 말고 당신의 재능에 물을 주자.

#2 Eighteen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