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힙시트로 안고, 첫째를 유모차로 끌며, 공원을 산책하고 돌아왔다. 한 시간 남짓 애를 안고 걸으니 목이 말랐다. 유모차를 접고, 옷을 갈아입히고, 세수가 싫다며 발버둥 치는 아이를 붙잡고 물 마사지를 한다. 물 한 잔이 간절하지만, 첫째가 하도 간식을 달라 앙알거리길래 시리얼부터 제공한다.

안아 달라고 우는 둘째에게 달려가 토닥이고 싶지만, 외출 전에 돌려놓은 세탁기가 할 일을 끝내 놓았다. 세탁이 끝난 옷을 내버려 두면 쉰내가 난다. 빨래부터 너는 것이 순서라 생각했다. 빨래를 널고, 아이가 목말라서 우는 건가 싶어 물을 건넸으나 한사코 거부한다. 배고픈가 싶어 준비해 놓은 이유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놓는다. 그리고 혹시 몰라 두유를 건넸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꼴깍꼴깍 맛있게 마시는 우리 도련님. 엄마는 목마른데 너는 좋겠다.

애들이 먹을 거에 정신 팔려 있는 동안, 바닥에 벗어 놓은 외출복들을 정리해서 빨래통에 집어넣는다. 둘째가 일회용 빨대로 장난치다가 불만이 생겼는지 서럽게 운다. 이유식이 조금 식어서 건네보았으나 안 먹는다며 절레절레. 밥 안 먹는데 우는 것을 보니 졸린 게 분명하다. 모유를 먹으며 자는 버릇이 있어 침대로 가려고 아이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첫째가 시리얼을 먹다 우유를 옷에 흘렸다며, 갈아입혀 달라 한다. 다 먹으면 한 번에 갈아입혀 주겠다 했지만, 지금 당장 옷을 갈아입고 싶다고 깔끔을 떤다. 둘째가 첫째의 생떼를 보고 자아성찰을 하는 건지 조용하다. 조용한 틈을 타, 첫째의 바지를 갈아 입힌다. 첫째가 깔끔한 옷에 만족스러운 눈치다. 이 틈에 물을 마실까 했지만, 둘째가 참을 만큼 참았는지 또 울먹인다. 수유하고 물을 먹던가 해야겠다.

아이를 안고 침실로 갔다. 매트리스에 누워서 수유하는 게 편하다. 우리는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첫째가 뒤에서 말한다.

“여기 내가 잘 거니까 다 나가!”

'네가 이 집 샀어? 그리고 이거 내가 고른 매트리스야!!!'라고 외치며 똑같이 애처럼 굴고 싶은 마음을 눌러 담고 답했다.

"우리 딸, 엄마가 모유 수유 다 하고 바로 나갈게, 좀만 기다려줘."

소용없었다. 밀고 들어온다. 인간 로드롤러가 따로 없다. 위에서 찍어 누르고 옆에서 밀고. 짜부라지는 중인데도, 둘째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짭짭거리며 누워있다.

"우리 딸, 네가 혼자서 자고 싶은 건 알겠는데, 엄마가 지금 수유하고 있으니까 다 하고 바로 나갈게, 조금만 기다려. 자꾸 아프게 누르니까 엄마가 힘들어."

원하는 대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슬퍼진 첫째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누가 들으면 엄마가 한 대 때린 줄 알겠다. 비 오는 거리에서 무릎 꿇고 절규하는 남주인공처럼, 찢어지도록 서럽게 운다. 등 뒤에서 우는 첫째의 소리에 삐- 이명이 들리는 것을 보니, 소음 측정기로 재면 총탄 소리와 비슷할 것 같다.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리를 지르곤 했다.

'엄마가 지금 뭐 하는지 안 보여? 누르면 아프다고 했지! 자꾸 이렇게 우는 이유가 뭐야, 왜 이렇게 못살게 굴어, 도대체!!!'

슬슬 참을성에 한계가 온다. 목이 찢어지게 마르다.

그런데 지금 성질대로 소리 지르면, 아이가 지쳐 잠든 다음 혼자 할 짓이 빤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니었을 텐데, 조금 참으면 되는 건데 왜 그랬을까. 나는 엄마 자격도 없어. 애가 날 보고 뭘 배우겠어. 왜 맨날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반복하는 걸까.’

죄책감에 꺼이꺼이 울 게 틀림없다. 아이의 고성이 빨간 뿔이 두 개 달린 악마의 유혹으로 들렸다.

‘어차피 넌 영원히 변하지 못할 거야. 그냥 소리 지르고 편해져.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그렇게 살잖아. 갑자기 왜 안 하던 짓 해?’

등줄기가 오싹하다. 악마는 습관대로 하길 바랐다. 성격대로 질러서 악마가 키득거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악순환을 끊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아이들을 낳기로, 보살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다. 사랑받는 아이들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원하는 건 사랑이고 평화다. 오늘만은, 오늘 하루만은 평화롭게 넘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소리 지르려던 입을 꾹 닫고, 열어 주지 않았다.

조금 뒤, 아이들이 눈을 비비며 뒤척이더니 잠들었다.

머그컵에 내 안의 악마를 이긴 오후를 한 컵 가득 채워 벌컥벌컥 들이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