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사랑하고 날은 밝았는데, 나는 여전히 당신과 나눈 그날 밤을 몇 잔 들이켜고 숙취에 허우적댄다. 길을 걸으면서도 당신은 분명 하룻밤 만에 잊어버릴 감정이 온몸을 헤집는다. 비가 지지부진 내리듯, 끝맺지 못한 환희가 눈동자에서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이 혹여나 이 기쁨을 뺏어갈까 싶어 우산을 푹 눌러쓰고 걷는다.
당신과 다투고 날은 밝았는데, 나는 여전히 당신과 날카로운 말을 나눴던 밤의 자락을 놓지 못한다. 길을 걸으면서도 당신은 분명 하룻밤 만에 잊어버릴 말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잇속을 비집고 나오는 아픔을 죄 없는 입술만 잘근거리며 삼킨다. 처마에 고여있던 빗방울이 이윽고 떨어지듯, 끝맺지 못한 아픔이 눈에 그렁그렁 매달리다 떨어진다. 그 모습을 지나가는 길고양이에게도 보이기 싫어 우산을 푹 눌러쓰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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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 둘째가 있을 때였다. 남편이 말했다.
“집에 있으면 불행해. 계속 이렇게 지내면 앞으로도 불행할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견딜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것은 괜찮았지만 그와의 관계가 깜깜한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한 밤 중이었지만 탈출하다시피 집 밖으로 나왔다.
공원 근처를 배회했다.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밤의 장막이 가려주었다.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나름 살아보겠다고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노력한다고 해결될까? 헤어져주는 것이 그가 행복해지는 길일까?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물음표가 끊임없이 줄 지어 나타났다.
쌀쌀한 날이었다. 감정을 토해내니 몸이 신경 쓰였다. 생명이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어서 마음껏 불행할 수가 없었다. 달리 갈 곳도 없어서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우리는 오래 같이 살았음에도 한 순간에 불편해졌다. 집에 있을 때는 원래 속옷 바람으로 편하게 지내는데, 불행하다는 사람 옆에서 그러고 있기도 민망해서 주섬주섬 잠옷이라도 걸쳤다. 오며 가며 마주칠 때마다 서로에게 긴장이 느껴졌다. 서늘함을 감춘 침묵을 귀신 같이 알아챈 첫째가 엄마 아빠를 번갈아 쳐다본다. 우리는 평소처럼 웃는답시고 입꼬리를 올리는 시늉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을 하루 정도 가졌다. 우리는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냐고, 상처받았다며 툴툴거린다. 납득이 갈 때까지 서로의 진술을 듣는다.
입장이 이해가 간 뒤에야 서로 안아줄 힘이 생겼다. 화해의 포옹으로 미안함을 건넨다. 지금은 그 때 우리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조차 가물가물하다. 우리 사이는 아주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때도 있음을, 그것은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단지 상황 중 하나였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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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도 갈등할 때가 있다. 하물며 자기 자신은 숨이 붙어있는 한 떨어질 수 없는데 오죽하겠는가. 가끔 미울 때도 있는 게 당연하다.
싫은 순간에는 미워 보인다. 불완전해 보인다.
그림자가 일부를 삼켜 달의 모양이 달라 보이듯, 우리도 상황만 달라졌을 뿐 서로의 자리에서 완전하다.
그 사람도 그럴 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
그도 부족함 없이 완전하다.
당신이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