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전모드가 없는 님에게,

미출간 원고 #22 #23 미리보기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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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전모드가 없는

님에게,

나래32
10.01.2022

미출간 원고

#22 Just me and you

#23 End of a day

#22 Just me and you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 기도문에 내일 먹을 밥 얘기는 없더라.
오늘. 오직 오늘이더라.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말이 유행일만큼 시끄러운 요즘이다. 역사를 잊을 만큼 바쁘게 살기 때문에 역사가 지속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잘 먹고 잘 사나 국가 간의 경쟁이 끊이지 않고, 여당과 야당도 수 백 년 전과 다르지 않다. 회사도 지난 분기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려 한다. 친구나 연인 또는 가족끼리도 시기하고 미워하느라 사랑했던 지난날을 까먹기 일쑤다.
나 하나만 건사하기도 바쁘다. 상처받았던 날도 떠올려야 하고, 새로운 도전이 실패할까 걱정도 한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아이처럼, 생각은 자꾸 현재를 벗어나 과거와 미래로 떠나고 싶어 한다. 따끈따끈 살아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을 두고, 생각은 어디를 그리 떠나려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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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이 5살이던 해의 여름이었다. 공원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모래놀이도 신나게 즐겼다. 땀을 한 바가지로 흘렸더니 목이 마르단다. 손을 잡고 공원 옆의 카페로 이끌었다. 복숭아 아이스티를 내밀었다. 정말 목이 말랐나 보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빨대를 통해 들어오는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말을 걸었다.
“맛있어? 시원하지?”
딸은 대답은 고사하고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의 우주에는 복숭아 아이스티만 있고 나머지는 사라진 듯했다. 음료수만 남기고 다른 것들은 의식의 뒤안길로 던져 놓는 딸이 신기했다.

아빠는 지하철을 타면서 다른 일을 하는 나를 신기해했다. 아빠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면서 지하철을 타는 것이 어렵다 했다. 무언가에 심취하다 보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곤 해서 불편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할 때 누군가 개입하면 바로 집중이 깨지고, 아무도 없어도 다른 생각이 끼어들어 방해받는 일이 많은 나는 오히려 그런 집중력이 부러웠다. 생각을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단순하고 평화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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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태스킹을 잘하는 것은 나의 강점이다.
남편은 우유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하면 정말 우유팩만 들고 온다. - 그럴 때마다 기계인간이라고, 명령어를 입력하면 입력한 명령만 처리한다고 놀리곤 한다. -
나는 남편이 우유를 가져오라고 하면, 갔다 오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아이의 기저귀를 냉장고로 가는 길에 버리고, 아이들도 먹을 수 있으니 컵을 여러 개 챙긴다. 그 와중에 싱크대에 이물질이 보이면 그것도 닦는다. 그리고 우유를 챙겨 간다. 오며 가며 필요한 일을 스캔하고 빠르게 해결하는 데에 능하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남편처럼 살고 싶었다. 장인이나 한 가지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문가, 커리어 우먼들을 동경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다가 두 마리 모두 놓치는 일이 많았던 나와 비교하면 그들의 커리어는 멋지게 쌓였다. 어떤 분야의 정점을 찍은 사람들은 자기 일에 온 힘을 다 했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지만 전문가의 전공은 꼭 하나여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수많은 것이 궁금했다. 하나에만 몰두하기에는 이것저것 다 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과했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하루는 선택하기로 정했다. 호기심이 많은 기질을 내려놓고 좁지만 깊은 장인이 될 것인지, 관심이 가는 것을 탐구하면서 얕지만 넓은 탐험가가 될 것인지. 나는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얕지만 다양한 경험도 커리어로 쌓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 작가가 나에게 맞는 것 같았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의 총합과 동일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작가는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 수 있었다. 나만의 카테고리를 마음껏 추가할 수 있다. 그것이 위안이 되었다. 나의 장르에서는 아무도 내 경험의 깊이가 얕다고 말할 수 없다. 나만의 성역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좁든 얕든 내 경험이 자산이 되고, 그 경험이 또 다른 경험과 융합해 복리로 쌓인다. 뇌에서 기가 막힌 콜라보를 연출할 때의 희열은 보너스다.
나처럼 멀티태스킹에 능하고,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이 어떤 곳에선 훌륭할 수 있음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당신의 빛나는 능력을 알아주는 분야가 반드시 있다. 없는 것 같다면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나만의 분야를 찾았음에도 이것저것 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다면 다음 챕터에서 내가 제안하는 방법을 따라 해 보길 권한다.

#22 Just me and you fin.

#23 End of a day

인간은 시스템 종료가 안 돼.
잘 때도 뇌는 오늘 모은 기억들 정리해야 하고,
피부는 닿는 건 뭐든 느껴야 해.
심장은 말해 뭐해.

네 몸 지금도 애쓰는 중이니까,
마음이라도 좀 쉬게 해 줘.

"모든 인류의 문제는 방에 조용히 혼자 앉아 있지 못하는 무능함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한 블레즈 파스칼은 알았을까. 자신이 한 말이 먼 훗날 한 동양인 주부의 뼈를 때릴지.
나는 멍하니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몸을 집어삼킬 만큼 엄청난 중량의 공허함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인생에 여백이 느껴질 때마다 그 공허감을 메우려고 드라마를 봤다. 내 안의 그것을 볼 수 없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내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배워야 인정받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것은 게으르다는 증거였다. 그것이 지식이나 생산적인 경험에 도움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사는 것은 너무 피곤했다.
둘째로, 나는 내가 싫었기 때문에 내 생각도 싫어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곧, 나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이유로 드라마의 장면으로 도망가 나의 이런 상황을 잊으려고 노력해왔다. 이 방법이 인생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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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쉴 틈 없이 바빠서 머리가 터질 것 같거나 공허할 때마다 내가 하는 방법이 있다.
먼저, 우리 몸은 겪었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고 매분 매초 살아있음을 일단 명심하라.
그다음, 컵에 물을 따라라. 물을 따를 때 물이 컵에 부딪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자. 그리고 컵 손잡이와 지문이 닿을 때 나는 뽀드득거리는 소리와 만질한 촉감을 느껴보아라. 그리고 물을 마셔보자. 꼴깍꼴깍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에 집중해보자. 지금 따라해 보아라. 몸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면 당신이 집중하기로 정하기만 해도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당신의 심장은 뛰고 있다. 코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의식하기만 해도 당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이나 트라우마에 파묻혀 있을수록 이런 감각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생각은 너무 강력해서 괴로운 감각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마음만 먹어도, 느낌을 지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었다는 사실조차도 지울 수 있다.

책 <몸은 기억한다>에서는 감각을 지우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극도로 괴로운 감정 상태에서 속이 뒤틀린다거나 심장이 부서지는 기분을 느낀다. 감정이 주로 머릿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통제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지만, 가슴이 무너지거나 복부를 한 방 맞은 것 같은 느낌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이 끔찍한 내장 감각을 떨치려고 무엇이든 시도한다. 다른 사람에게 절박하게 매달리거나 약물 또는 알코올의 기운을 빌려 감각을 무디게 만들거나, 칼로 자기 피부를 그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감각’으로 대체하는 행동 등이 이에 포함된다. 약물 중독부터 자해 행동까지, 얼마나 많은 정신 건강 문제가 감정 때문에 발생한 이 견딜 수 없는 신체적 고통에 대처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될까?”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답답한 느낌이 생각에 잠식되고 있다는 신호탄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촉감으로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자.
그래서 피부는 당신을 생각에서 구출하는 응급실처럼 24시간 연중무휴로 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3 End of a day fin.